우리는 그림을 보고 글을 봤다. 그리고 해석이라는 단계를 거쳤다. 그렇다면 우리의 해석을 타인에게 전달하는 일은 어떠할까?
예를 들어 내가 어떠한 작품이나 장면을 목격하고 이를 타인에게 전달한다고 가정해보자. 내가 본 것은 이러하다.
'소년의 숙제를 먹고 있는 팬티 입은 염소를 타고 컴퓨터를 하고 있는 한 소년'
도대체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나 싶을 정도로 정신 나간 이야기 같지만 나는 충실히 내가 본 것을 묘사했다. 쉽사리 나의 묘사가 이해되는가?
사람은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상황을 인지하는 경향이 강하다. 경험은 가장 직관적이고 가공이 필요 없는 직접적인 체험이다. 반면 상황이나 작품을 전해 듣는 것은 간접 체험이기에 다소 차이가 있다. 즉, 내가 직접 체험한 것을 당신이 보기 전에는 상상의 영역에서 추론으로 내 이야기를 재구성한다.
그리고 간적접인 체험으로 상상하던 것을 직접 경험하게 되면 나의 상상과 다소 차이가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내가 경험한 것을 타인에게 내 경험과 가장 유사하게 전달하는 수단은 무엇이 있을까? 가장 간편한 방법은 '말'이다. 언어는 훌륭한 전달 수단이자 많은 것을 담아 표현할 수 있다. 이 언어는 문자로도 표현할 수 있고 이 또한 훌륭한 전달 수단이다.
하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고 있는 이 언어는 당신이 생각하는것보다 더 복잡하고 많은 것을 생각해야 한다.
다음의 14분가량의 영상을 하나 보도록 하자. 러시아 인지학자인 Lera Boroditsky의 TED 강연이다. 그녀는 강의를 통해 매우 오래된 질문을 하나 던진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우리의 사고방식을 형성할까?" 그리고 그녀는 그녀만의 해답을 찾아간다. 유튜브 자막 기능을 이용해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내용이 훌륭할 뿐 언니가 이뻐서 추천하는 게 아니다.
영상의 그녀는 짧은 강연을 "여러분이 어떤 언어를 말하는지가 여러분의 사고방식을 형성합니다."라는 말로 마무리한다. 결국 인류가 오래전부터 가졌던 질문에 "YES"라고 답한 셈이다.
흔히 사피어-워프 가설로 알려진 언어적 상대성이라는 말이 있다. '사피어-워프 가설'이라는 명명에 여러 말들이 있지만 여기서는 이름보다는 사피어와 워프가 이야기한 부분을 살펴보자. 학계는 이에 대해서 전적인 수용이나 전적인 거부도 하지 않는 입장이다. (어찌 보면 기본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라 워프의 가설은 쉽사리 인정되고 있지 않다.)
워프는 사피어의 제자이고 사피어의 생각을 워프가 발전시켰다고 본다. 사피어는 '현실 세계는 상당한 정도로 그 집단의 언어습관의 기반 위에 형성이 된다'라고 말했다. 위 레라 브로디츠키와 비슷한 생각이다. 반면, 워프는 좀 더 대범하고 파격적인 주장을 펼쳤다.
하나는 사람들의 인지 범주는 그들이 말하는 언어에 의해 결정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들의 행위는 상황에 따라 그들이 사용하게 되는 언어의 언어 범주에 의해 지배받기 쉬울 것이라는 것이다.
위 세 사람의 말이 어려울 수도 있다. 쉽게 말하면 스피어와 브로디츠키는 언어가 사람의 세계관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고 그 세계관이 언어로 표현되는 반면, 워프는 언어가 세계관을 형성하고 세계관이 언어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 글을 보고 있다면 여러분은 한글과 한국어를 사용하고 있는 대한민국 사람일 것이다. 여러분도 잘 알고 있겠지만 한글의 우수성은 세계 어느 문자보다 훌륭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심지어 우리가 사용하는 문자의 창제자, 창제 연도, 어떠한 원리로 만들어졌는지 모두 알 수 있다. 한글의 자모를 풀이해 놓은 훈민정음해례본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이러한 한글을 오랫동안 사용한 민족은 우리 민족이 유일하기에 우리 민족만의 세계관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세계관은 다른 언어를 가진 다른 민족과 차이점이 있을 것이다. 즉, 민족 간에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세계관에도 차이가 있을 것이다. 1
사피어-워프의 가설은 이러한 점에서 그들의 가설이 맞다고 볼 수 있겠지만, 다른 언어체계를 가진 두 민족이 하나의 세계관을 공유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기에 이러한 가설이 맞다고 볼 수는 없다.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예를 들어 셈족어 계통만 살펴봐도 아랍어, 암하라어, 티그리냐어, 히브리어(이스라엘 한정)등 아카드어에서 파생된 셈어파 언어임에도 서로 비슷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2
무슨 논문을 쓰는 것도 아니고 내 블로그에서 이런 복잡한 글을 쓰는 것은 블로그 운영 취지에 어긋난다. 지금까지 말했던 것 중 이러한 것들이 있구나 정도로 그냥 대충 보고 넘겨라. 14분짜리 영상까지 포함되어있기에 분량이 너무 길다.
사람의 사고방식과 세계관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언어뿐만 아니라 사람이 태어난 지리적인 요인과 민족적 요인, 교육, 가정환경 등 너무나 많은 것들이 있다. 그리고 타인 역시 여러 요건들을 통해 사고방식과 세계관을 형성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비슷할 수 있으나 먼 관계이면 차이가 발생한다.
미국식이라는 표현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미국에서 통용되는 특유의 양식이나 격식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음식이라던지 태도라던지 우리가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것들을 가리켜 주로 말한다. 예를 들어 신발을 신고 침대 위에 올라간다던지 아침에 빵과 커피를 먹는다든지 우리나라 정서와 거리가 먼 것 들이다.
사용하는 언어를 비롯해 생활 양식등에서 많은 차이점을 가진 미국사람과 우리나라 사람 사이에 기본적인 세계관과 사고방식의 차이는 얼만큼 날까? 아마도 꽤 많은 차이점들을 보일것이다. 간단하게 살펴보면 미국은 기독교를 기반으로 해서 세워진 나라이다. 그들에게 밥먹을 때 기도는 낯선것이 아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대부분 밥먹을 때 기도는 굉장히 낯선 장면일것이다.
이러한 각기 다른 문화에서 자란 사람들이 하나의 작품을 보고 표현할 때, 그 표현 방식도 각 민족마다 차이점이 발생할 것이다. 같은 민족의 작품을 해석한다면 그나마 작가의 의도에 가깝게 접근할 수 있겠지만 타 민족이라면 자신의 민족성에 가깝게 해석할 것이다.이는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나만의 세계관, 나만의 사고방식이 세상을 해석하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타 민족의 작품을 해석하려면 적어도 타 민족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필요하고 그제서야 그 작품에 접근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배움이다.
성경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우리 국민 정서에 맞춰 아몬드나무를 살구나무로, 올리브를 감람나무로, 기타르를 거문고로, 템버린을 소고로 친절한 의역도 좋지만 히브리 문화, 유대 정신을 지나치게 한국 정서로 이해하고 의역한다면 먼 훗날 우리는 다음과 같은 이미지로 성경을 이해 할 수도 있을것이다.
타 민족의 글과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민족의 정서와 문화 이해는 기본 중에 기본이다. 라는 말을 끝으로 이번 챕터인 '세상을 바라보는 눈' 편을 마친다.
-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47911 [본문으로]
- 어원적으로 따지면 다소 잘못 붙여진 명칭이다. 그러나 관습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본문으로]